눈먼 자들의 도시 - 주제 사라마구 (Blindness - Jose Saramago)

영화를 보기 전에 책을 먼저 읽어두려고 했던 작품인데, 책을 읽고 나서 영화를 보고 싶은 마음이 싹 사라졌다. 글을 읽으며 머릿속으로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끔찍했던 장면들을 굳이 다시 영상으로 보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개인적으론 귀가 안 들리거나 말을 못하는 것보단 앞이 안 보이는 것이 훨씬 더 끔찍하다고 생각하는데, 이 책 속에선 어느 날 갑자기 모든 사람의 눈이 차례차례 멀게 된다. 제목 그대로 눈먼 자들의 도시로 변한 도시와 그 안에 사는 사람들은 통제 불능 상태에 이른다. 초중반까진 초기에 눈이 멀게 된 사람들이 함께 갖혀 생활하게된 격리소에서의 일상이 주를 이루고, 후반엔 격리소를 나온 사람들이 폐허가 된 도시를 헤매다가 다시 빛을 찾게 되기까지의 이야기다.

모든 사람이 눈이 멀었을 때 홀로 눈이 멀지 않았다가 모든 사람이 다시 빛을 찾았을 때 홀로 빛을 잃게 된 의사의 아내
그녀의 존재는 어떤 의미였을까…….



호숫가 살인사건 - 히가시노 게이고 (レイクサイド - 東野圭吾)

난 역시 머리가 나쁜 것인지;; 미스터리를 읽으면 범인을 거의 다 가르쳐줘야 범인이 누군지 눈치 챈다. 나름 열심히 머리를 굴리며 대체 그들이 공유한 비밀이 무엇일까 생각했었는데, 내가 생각한 것과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풀리는 그들의 비밀이라니 @.@ 그렇게 재밌거나 여운이 남는 책은 아니었지만, 그럭저럭 읽었다. 내가 읽은 히가시노 게이고의 책 중에선 아직까진 [용의자 X의 헌신]이 최고다. 히가시노 게이고는 내가 읽은 건 아직 빙산의 일각에 불과할 정도로 작품 수가 많은 작가 중의 한 명인데, 이렇게 작품 수가 많으면 읽을 게 많으니 좋기도 하고 한편으론 짜증 나기도 한다. 사람 마음이란 게 참 웃긴다. 



화차 - 미야베 미유키 (火車 - 宮部みゆき)

오오~ 미미여사여~!!! 어쩜 이리 글을 잘 쓰시는 겁니까!!! 그동안 이상하게도 미미여사의 글은 많이 읽은 듯한 기분이 들었었는데, 정작 읽은 건 [모방범]뿐이었다. [화차]는 두 번째로 만나는 미미여사의 작품~! [모방범]때도 느꼈지만, 그녀의 필력은 놀라울 정도로 완벽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재미와 작품성 두 마리의 토끼를 잡는 건 쉽지 않은 법인데, 그녀는 두마리 토끼는 물론 그 이상의 것을 잡고 있는 것이 아닐까 싶다. 그녀는 [화차]에선 크게 보자면 무분별한 신용카드 사용과 대출로 인한 개인파산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데, 다소 딱딱 해질 수 있는 소재를 미스터리와 접목시켜서 법률적인 설명도 쉽게 이해할 수 있었다. 이 책은 온갖 신용카드와 대출이 넘쳐나는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사람들이라면 모두 읽어봤으면 싶다. 이 책 다음에 읽은 [이유]도 좋았지만, 난 [화차]쪽이 더 마음에 든다.    


 
이유 - 미야베 미유키 (理由 - 宮部みゆき)

상 받을만한 내용이다 => 책을 읽고 가장 먼저 든 생각이다. [화차]의 키워드가 개인파산이었다면 [이유]의 키워드는 부동산이다. 사회파 미스터리 작가라 불릴만한 소재가 아닐 수 없다. 이 작품은 독특하게도 대부분의 미스터리 소설이 사건 당시를 시점으로 쓰이는 것과는 달리 사건이 해결된 후를 시점으로 쓰였다. 어떠한 주관적인 개입 하나 없이, 사건 관련 기록과 관련 인물들의 인터뷰만으로 이루어진 보고서 같은 책이다. 미미여사의 작품 속엔 유난히 등장인물이 많다고 생각하는데, 나오는 사람이 많아지면 이름이 헷갈리는 나로선 가끔 이 사람이 그 사람인가 싶을 때가 있다. 아무리 많은 사람이 나와도 헷갈리는 않는 건 한글 이름뿐이다. 역시 난 한국인!!! ^^;; 이야기가 삼천포로 빠졌지만 어찌 됐든 참 잘 쓰인 작품이다. 덧붙이자면 마쓰모토 세이초는 드라마로 많이 접해서 좋아하게 된 작가인데, 미미여사가 이분과 참 닮아있는 것 같다. 미미여사 자신도 이분을 존경한다고 하고 말이지. 마쓰모토 세이초의 소설은 우리나라에 번역돼서 나온 게 두 권인가 밖에 없어서 그게 좀 아쉽다. 왜 출판을 안 해주는 거지? [검은 가죽수첩]이나 [짐승의 길] 이런 거 정말 읽고 싶은데 ㅠ.ㅠ  



아르헨티나 할머니 - 요시모토 바나나 (アルゼンチンババア- よしもとばなな)

30% 세일해서 싸게 산건데, 100페이지도 안 되는걸 알았다면 사지 않았을 거다;; [이유]의 6/1도 안 되는 분량, 버스 안에서 정독해서 30분 만에 다 읽었다. 난 책의 내용도 중요하지만 두꺼운 책이 좋단 말이다 ㅠ.ㅠ 내용도 이게 뭐지? 싶었다. 소설이라기보단 그냥 사춘기 소녀의 일기장을 훔쳐보는 기분이었달까……. 일본영화 특유의 한정된 공간에서의 정적인 영상으로 찍었다면 영화로서는 괜찮을 듯싶지만, 나에겐 나쁘달 것도 좋달 것도 없는 아르헨티나 할머니였다. 



검은집 - 기시 유스케 (黑い家 - 貴志祐介)

"인간의 마음보다 더 무서운 것은 없다." 라는 선전문구가 너무나 잘 어울리는 호러소설 검은집. 이 책은 이 세상에 인간보다 더 무서운 것은 없다는 나의 평소 생각을 더욱 굳건하게 만들어주었다. 내용은 떠올리기도 끔찍하고, 글로 쓰는 것 또한 내키지 않는다. 이거 우리나라에서 영화로도 나왔다는데, 절대 보고 싶지 않다. 책을 읽고 나서도 책조차 보기 싫어서 안보이게 책장 구석에 넣어놨다. 미스터리 소설까지가 딱 내 한계인가보다. 미스터리는 괜찮지만 호러는 역시 안돼 ㅠ.ㅠ 호러도 심리적으로 오싹한 건 괜찮지만, 시각적으로 끔찍한건 싫다. 그냥 영화에서도 잔인한 장면은 눈 가리고 안 보는데 ㅠ.ㅠ 전에도 썼지만, 결과만 보는 건 괜찮은데 (CSI의 시체 같은) 그렇게 되기까지의 과정을 보는 건 싫은 거다. 



[아르헨티나 할머니]를 제외하곤, 내용이 다 살인&사회문제 등등 이렇다 보니 내 정신이 다 피폐해짐을 느껴서 당분간 저런 종류의 책은 피해서 읽기로 했다. 이번에 읽은 책 중에 최고는 [화차], 빼먹고 위에는 안 썼는데 화차는 마지막 마무리도 마음에 들었다. 올해는 편독하지 않으려고 했는데 이미 사둔 책은 읽어야 하니까 그 책들을 다 읽을 때까진 어쩔 수 없을 테고……. 일본 미스터리 읽는 걸 줄인다고 해도  미미여사의 책은 앞으로도 계속 읽게 될 것 같다.